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[기획칼럼] 손길신 前 철도박물관장의 철도歷史 이야기「제18話」

호남철도 개통을 알리는 신문기사 제목은“슬프다 호남철도”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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매일건설신문
기사입력 2019/04/09 [09:17]

호남철도 개통을 알리는 신문기사 제목은 '슬프다 호남철도'

 

본래 호남선은 경원선과 함께 1910년 이후 11개년 계속사업으로 계획했었지만 일제는 한국을 병합한 후 1911년 이후 5년으로 단축하여 조선총독부 주관아래 경부선의 지선 형식으로 대전역을 기점으로 가수원, 두계, 논산, 강경, 이리를 경유 김제, 노령, 송정리, 나주, 영산포, 학교, 목포까지 충남과 전·남북 등 3개도를 경유하여 호남평야 곡창지대를 통과하고, 금강·만경강·영산강 유역 농산지대를 집결할 수 있도록 하였으며, 이리~군산 간 지선을 추가하여 옥구평야를 포함시켰다.

 
특히 군산은 1899년 5월 1일 개항되어 일본으로 해상운송이 가능했으며, 1908년 군산~전주 간에 최초의 신작로(新作路)를 개설하여 농산물 운반통로가 된 도시로 호남철도 전 구간 개통에 앞서 1912년 3월 6일 이리~군산 간을 제일먼저 개통시켰다.

 

호남철도는 1910년 5월 대전에서 측량을 시작하여 10월 남쪽으로 공사를 시작하였고, 다음해 10월부터 북쪽방면으로 목포~사거리간 공사를 시작하였으며, 호남선은 개통시기를 앞당기기 위하여 역(驛)설비를 최대한 간소화하고, 교량 등 구조물은 부득이한 것 외에는 가설(假設)구조로 하고, 터널 등 대단위 토목공사는 후순위로 미루면서 속성공사를 추진하여 불완전한 곳이 많이 발생했다. 이에 1912년10월부터 개량공사를 시작하여 가수원~두계 간 제2 가수원교량 공사, 대전~이리 간 및 나주~목포 간 개축공사, 대전역 개축 확장공사 등을 추가하였다.

 
공사재료 운반은 바다와 강을 이용한 운송이 병행되어 대전으로부터의 수송은 주로 육로수송이었으며, 군산, 강경은 금강을 이용하는 외에 군산은 바다를 이용한 수송이 함께 이루어졌으며, 이리~정읍 간은 만경강과 동진강과 줄포항이 이용되었고, 남부는 목포항과 영산강을 이용하여 운반되었다.

 

대전~연산간의 경우 1911년의 홍수에 이어 1912년 7월 대홍수는 준공 후 얼마 되지 않은 시기로 토공이 다져지지도 않았을 뿐 아니라 속성공사로 인한 피해가 컷으며, 제2 가수원천 교량 하류의 물막이 파괴로 선로변경이 필요하여 사진포터널 설치로 선로길이가 약 1.1㎞ 단축되었으며, 제2 노령터널(약903m)은 구배가 심하고 석영, 화강암 등으로 굴착이 어려워 산 중턱에 구멍을 파서 공사를 하는 등 관통에 2년8개월이 소요되었고, 간사지를 매립하여 지은 목포역은 매립용 흙이 부족하여 공사가 지연되기도 하였다.

▲ 신한민보     © 매일건설신문


1914년 1월11일 정읍~송정리 구간이 개통됨에 따라 대전-목포간 전 구간이 개통되었으며, 1914년 1월22일 목포역에서 호남선 개통식이 거행되었다.

 
재미 한인단체가 발행한 이 날자 신한민보는 「“슬프다 호남철도” - 우리나라 자본가들이....철도 놓기를 작정하였다가 왜놈의 저해로 뜻을 이루지 못하고...이것도 또한 우리의 눈물재료의 하나이더라」는 기사를 실어 호남선 개통 소식을 게재하였다.  

 

 

 

 

 ☞ 손길신 前 철도박물관장의 철도歷史 이야기 「제19話」에서도 이어집니다. 

 

손길신 전 철도박물관장의 철도역사 이야기「제18話」, 관련기사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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